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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새옹지마 인생의 강물 속에서

강민구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 前 창원‧부산 지방법원장
  • 2026.06.09.     제 49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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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옹지마 인생의 강물 속에서


강민구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 前 창원‧부산 지방법원장



인생은 참으로 새옹지마의 강물입니다. 어느 날은 눈앞의 불운처럼 보이던 일이 훗날 더 큰 축복의 문 이 되고, 어느 날은 영광처럼 보이던 자리가 오히려 삶의 자유를 가두는 울타리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 은 그때마다 모든 뜻을 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세 월이 지나 뒤돌아보면,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한 사람 의 인생을 묵묵히 이끌어 왔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 게 됩니다.

1988년 3월, 처음 법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젊은 날의 긴장과 사명감 속에서 시작된 그 길은 2024년 1월 정년이라는 형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수많 은 기록과 사람, 눈물과 분쟁, 법리와 양심 사이에서 36년을 걸었습니다. 판결문 한 줄 한 줄마다 한 사 람의 운명과 가족의 시간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 세월이 끝났을 때, 한 생애의 큰 장이 닫히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강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2024년 5월부터 변호사 생활이 시작되었고, 이제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법관으로서 바라 보던 세상과 변호사로서 마주하는 세상은 또 달랐 습니다. 의뢰인의 절박함, 시장의 냉엄함, 법률 서비 스의 현실을 더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동시 에 다시 배우고, 다시 일어서고, 다시 나누어야 한다 는 새로운 소명을 느꼈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AI 실전 활 용법 강연 요청이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한 달에 두 차례 정도,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불러 주십니다. 나 이 든 강사를 아직도 찾아 주는 일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강연장에 서면 저는 단순히 기술 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디지털 문명의 거대 한 전환 앞에서 뒤처질까 두려워하는 분들에게 “괜 찮습니다. 지금부터 함께 배우면 됩니다”라고 손을 내미는 마음가짐으로 섭니다.

정년퇴임 무렵, 저는 농담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미 국의 거대 AI 기업들이 나에게 300조 원짜리 퇴임 선물을 주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 말이 올해 들어 점 점 실감이 납니다. AI 성능은 말 그대로 양자적 도약 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특히 법조 분야에서는 이미 인간의 요약 능력과 분 석 능력을 빠르게 추월하고 있습니다. 과거 젊은 어 쏘 변호사들이 밤을 새워 하던 상당 부분의 일이 이 제 AI에 의해 실질적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두려 운 변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대로 활용하면 약 자에게도 지식의 무기를 나누어 줄 수 있는 문명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 인연 속에서 『AI, 그 길을 묻다』라는 단행본 1,200쪽을 우리 사회에 내 놓게 되었습니다. 제게 그 책은 단순한 저술이 아닙 니다. AI라는 낯선 바다를 건너야 할 사람들에게 드리는 내비게이션이자 나침반입니다. 법조인, 공직 자, 시니어 세대, 학생, 그리고 디지털 문명 앞에서 서성이는 모든 이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길을 물 어보자”는 작은 등불입니다. 그 책을 세상에 제공하 게 된 기쁨은 참으로 큽니다.

돌이켜보면, 2023년 10월 무렵 대법원장 후보로 검 토되다가 그 자리에 나아가지 않게 된 일도 참으로 새옹지마였습니다. 당시에는 한 인간의 경력에서 매우 큰 분기점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천운이었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 갔다면 매일같이 TV 화면에 비치고, 무거운 제도와 정치적 시선 속에서 한 발 한 발 조심해야 했을 것입 니다. 지금처럼 디지털ㆍAI 상록수협회를 꾸리고, 전국 강연을 다니고, 저술을 이어 가고, 경제적 자 립 구조를 세우며 자유롭게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 는 일은 꿈꾸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자주 생각합니다. 인생 6학년의 타임라인이 서서히 저물어 가는 듯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갑옷을 입고 새 길로 들어선 것이라고 말 입니다. 영화 아이언맨의 스타크 회장이 자비스라 는 지능형 갑옷을 장착하듯, 저 또한 AI라는 새로운 갑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젊은 날부터 컴퓨터와 디 지털에 몰입했던 시간, 법원 정보화에 매달렸던 세 월, 전자책을 만들고 자료를 축적했던 모든 시간이 오늘의 이 인연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쩌면 전생에서부터 이 길은 이미 조용히 예정되 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마음의 열정만으로는 오래 걸을 수 없습니다. 몸이 따라 주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막내아들이 아버지 건강을 위해 PT 훈련 티켓을 준비해 주었습 니다. 그 덕분에 난생처음 주 2회 근육훈련을 시작 했습니다. 땀을 흘리며 근육 하나하나를 깨우다 보 면, 인생 후반전에는 지식만큼이나 체력이 중요하 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변호사업도, AI 전도사의 길도, 강연과 저술도 결국 몸과 마음이 튼튼해야 가 능한 일입니다. 이제는 쓰는 에너지뿐 아니라 다시 채우는 에너지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깊이 인 식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 조용히 명상하며 하동 작설차 한 잔을 머 금습니다. 찻물이 목을 타고 내려갈 때마다 지나온 인연들이 떠오릅니다. 법관 시절의 법정, 퇴임의 순 간, 변호사 사무실의 첫날, 강연장의 박수, 책상 위 의 원고, 가족의 배려, 그리고 아직도 저를 불러 주 는 세상의 목소리까지 모두 감사의 대상입니다. 인생은 결국 소유가 아니라 인연입니다. 붙잡는 것 이 아니라 흘러가는 강물입니다. 그 강물 위에서 때 로는 배가 흔들리고, 때로는 안개가 끼고, 때로는 예 기치 않은 물살이 길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러나 시 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그 모든 굽이굽이가 오늘 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새벽에도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엽니다. 정년 이후에 이런 배움과 나눔의 길이 다시 열릴 줄 은 몰랐습니다. 법복을 벗은 뒤에도 또 다른 소명으 로 살아갈 수 있음은 망외의 기쁨입니다. 새옹지마 의 강물은 오늘도 흐릅니다. 

저는 그 물길 위에서 AI라는 노를 들고, 감사라는 등불을 켜고, 남은 생의 항해를 조용히 이어 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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