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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적선지가’의 삶이란 … 사람과 사람 사이에 쌓인 작은 선의의 흔적들임을 깨닫다

강민구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 前 창원‧부산 지방법원
  • 2026.05.26.     제 48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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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선지가’의 삶이란

… 사람과 사람 사이에 쌓인 작은 선의의 흔적들임을 깨닫다

  

강민구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 前 창원‧부산 지방법원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무엇으로 자신을 남길 것 인가를 자주 되묻게 됩니다. 재산인가, 명예인 가, 직함인가. 그러나 긴 세월을 돌아보면, 결국 남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쌓인 작은 선의의 흔적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제 삶을 되짚어 보며, 그 흔적들이 하나둘 모여 오늘의 저를 만들었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 습니다. 

법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이후 퇴직한 뒤에도 코 트넷 경조사 게시판 소식이 이메일로 전해집니 다. 

어느 날, 22년 전 힘겨운 시절을 보내던 후배 판 사가 퇴직한다는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할 만큼 지쳐 있던 그를 옆방 부장으로서 조용히 격려하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연락이 닿아, 제 사무실로 모닝커피를 함께 하러 오겠다는 약속을 받았을 때, 저는 이것이야말로 ‘적선지가’의 작은 결실 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늘 인수인계서와 매뉴얼을 만 드는 데 유난히 집착했습니다. 후임자가 같은 고 생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였습니다. 수 백 쪽에 달하는 자료를 전자책과 출력물로 남기 고, 디지털 파일 하나까지 정리해 넘기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시간을 아껴주는 일이 곧 사람 을 존중하는 길이라 믿었기에, 저는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서울법대 시절에도, 군 복무 시절에도, 저는 ‘함 께 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강의노트도, 예상 문제도, 혼자 쥐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누면 줄 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넓어진다는 것을 젊은 시절부터 배웠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도 친구들을 위해 매주 문제를 만들어 보내며, 함께 공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친구 들이 하나둘 법조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저 는 혼자가 아닌 삶의 의미를 배웠습니다.

제 인생에는 기적 같은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여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마음에 세 상의 무게를 알지 못한 채 성장했습니다. 중학교 와 고등학교 시절, 스승님들의 헌신적인 사랑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법시험 합격, 아내와의 만남, 육사 교수부에서 의 컴퓨터와의 인연, 해외연수, 도서관장 시절의 도전들…. 하나하나가 우연처럼 보이지만, 돌아 보면 모두 누군가의 도움과 배려 위에 놓여 있 었습니다.

대구지법 부장 시절, 과로로 쓰러질 뻔했을 때 손을 잡아 주신 선배의 온기, 사분위 활동으로 오해를 받을 때도 묵묵히 견딜 수 있었던 이유, 창원과 부산에서 새로운 사법문화를 시도할 수 있었던 용기 역시 모두 사람 덕분이었습니다. 저 는 혼자서 여기까지 온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 다.

그래서 저는 늘 마음에 새깁니다. “조금 손해 보 고 살자.” 재물도, 명예도, 지위도 결국은 다 놓 고 가는 것입니다. 돈의 두께가 근심의 두께가 되고, 건물의 높이가 걱정의 높이가 되는 세상 에서, 우리가 붙잡을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뿐 입니다. 

떠나는 날, 누군가의 기억 속에 따뜻한 장면 하 나 남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습 니까.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서서, 저는 ‘송백’이라는 이름의 한글로서의 또 다른 의미처럼, 사계절 흔 들리지 않는 삶을 꿈꿉니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 처럼, 어떤 자리에서도 원칙과 배려를 지키며 살 고 싶습니다. 후배에게는 다리가 되고, 동료에게 는 쉼터가 되고, 사회에는 작은 등불이 되는 삶 말입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화려했던 순간보다 조 용한 순간들이 더 소중하게 기억됩니다. 누군가 를 토닥이던 오후, 자료를 정리하던 밤, 후임을 위해 남긴 한 줄의 메모, 후배와 나눈 한 잔의 커 피…. 그런 장면들이 모여 제 인생의 책장을 이 루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에도 저는 같은 길을 걷고자 합 니다. 더 많이 가지려 하지 않고, 더 많이 나누려 하며, 더 높이 서기보다 더 낮은 곳을 바라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평생 배워온 ‘적선지가’의 의미이 며, 송백 강민구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가장 소 중한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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