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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무는 늘어나는데, 삶은 왜 나아지지 않는가

‘예쁜 하동’의 풍경 뒤에 가려진 우선순위의 실종
  • 2026.04.07     제 45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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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의 하동 인사이트 혁신을 향한 목소리


나무는 늘어나는데, 삶은 왜 나아지지 않는가


‘예쁜 하동’의 풍경 뒤에 가려진 우선순위의 실종



하동의 행정을 바라보는 군민들의 마음속에는 요즘 하 나의 물음이 깊게 맴돈다. 왜 이토록 나무를 끝없이 심는 가. 왜 멀쩡한 공간을 자꾸 뜯어고치는가. 왜 군민의 삶 을 직접 떠받쳐야 할 행정은 더디고, 조경과 정원 사업은 이토록 민첩한가.

물론 나무를 심고 거리를 가꾸는 일 자체를 탓할 수는 없 다. 문제는 그 자체가 아니라 순서와 정도, 그리고 반복 이다. 지금 군민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조경이라는 행위 보다 설명 없는 조경의 반복, 우선순위를 잃은 사업의 집 착, 보여주기 좋은 풍경이 생활의 절박함보다 앞서는 듯 한 행정의 방향에서 비롯된다.

하동에 더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는 군민 누구나 안다. 주차난과 도로 불편, 상권 침체, 청년 유출, 기업 유치 부 진, 의료와 복지의 공백, 농업의 불안이 그것이다. 군정이 정말 군민의 삶을 붙드는 행정이라면 당연히 이 문제들 앞에 먼저 서야 한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군민의 눈 에 가장 자주 들어온 것은 수목 식재, 가로수 정비, 정원 조성, 공원 손질, 그리고 그에 딸린 각종 부수 사업들이었 다. 군민 입장에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하동의 가장 급 한 문제가 정말 그것이었는가.

 ‘예쁜 거리’ 사업, 삶은 왜 더 팍팍한가

하동읍의 ‘예쁜 거리’ 사업, 진입도로 가로수 식재, 군청 주차장 부지의 군민정원, 공원과 산책로 정비에 이르기 까지 이름은 달라도 흐름은 하나다. 기존 공간을 보존하 고 관리하기보다 허물고 다시 만들고, 심고 또 옮기고, 베 고 다시 심는 행정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경관 개선’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군민 다수가 원 하는 삶의 기반 정비보다 사진이 잘 나오는 공간 연출이 더 앞서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군민은 ‘매력’, ‘명품’, ‘예쁜’이라는 수사 속에서 사는 것 이 아니다. 차를 세울 곳이 없어 돌고, 아이를 키울 환경 이 부족하고, 청년이 머물 직장이 없고, 장사가 안 되어 한숨 쉬는 현실 속에서 산다. 그렇다면 군정의 성과는 화 단의 넓이가 아니라 생활의 체감으로 증명돼야 한다. 군 민의 삶이 팍팍한데 거리만 번지르르해진다면, 그것은 행정의 본질을 건드린 것이 아니라 표면만 손본 것이다.

심고 또 베는 행정, 의문만 쌓이는 군민

더 답답한 것은 이런 사업들이 한두 번의 선택으로 보이 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곳은 멀쩡한 나무를 정비한다 며 손대고, 어느 곳은 자리를 잡은 공간을 다시 파헤치고, 어느 곳은 새로 심은 나무가 제대로 활착했는지조차 군 민이 알기 어렵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같은 말이 반복된 다. “왜 또 심느냐.” “왜 또 바꾸느냐.” “도대체 누구를 위 한 사업이냐.”


군민이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수목과 조 경 분야는 일반인이 적정 단가를 즉시 판단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나무 한 그루의 값도 규격과 수형, 수령과 활 착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렇기에 반복되는 조경 사업 앞에서 군민이 요구하는 것은 화려한 홍보가 아니 라 투명한 설명이다. 어떤 수종을 왜 선택했는지, 가격 은 어떤 기준으로 산정됐는지, 기존 수목은 왜 철거하 거나 옮겨야 했는지, 식재 후 고사율과 활착률은 어떠한 지, 하자보수는 어떻게 처리됐는지 군민이 납득할 수 있 어야 한다.

의혹은 침묵 속에서 자라고, 불신은 설명의 부재 속에서 커진다. 행정이 떳떳하다면 숨길 이유가 없다. 감정적 반 박보다 사업 목록과 계약 내역, 설계 자료와 유지관리 현 황을 차분히 내놓으면 된다. 그것이 소문을 잠재우는 가 장 빠른 길이다.

예산은 말이 없지 않다

나무는 말이 없고 정원도 침묵한다. 그러나 예산은 다르 다. 예산은 언제나 무엇을 더 중시했고 무엇을 뒤로 미뤘 는지를 말해 준다. 그래서 군민은 묻는다. 군청 주차장을 정원으로 바꾸는 일이 정말 지금 하동의 최우선 과제였 는가. 공원에 각종 부수 시설을 더하는 일이 청년 유출 과 기업 유치 부진, 주차난과 상권 침체보다 더 급한 일 이었는가.

지방행정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보이는 성과’에 대한 중독이다. 도로를 파헤치고, 나무를 심고, 구조물을 세우면 변화는 즉시 눈에 띈다. 사진도 남고 홍보도 쉽다. 그 러나 정작 군민의 삶을 바꾸는 일은 훨씬 더디고 어렵다. 기업을 유치하고, 청년이 정착할 기반을 만들고, 의료와 복지를 보강하고, 상권과 농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 군정이지, 쉬운 연출을 반복하는 것이 군정은 아니다.

군민은 바보가 아니다. 멀쩡한 것을 허물고 또 만들면 그 것이 발전인지 낭비인지 안다. 군민은 꽃의 색깔보다 행 정의 방향을 보고, 나무의 숫자보다 삶의 나아짐을 본다. 그래서 지금 하동 군정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식재 계획 이 아니라 더 분명한 해명이고, 더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더 엄정한 우선순위다.

예쁜 하동을 만드는 일에 반대할 군민은 없다. 그러나 보 여주기 좋은 거리보다 살기 좋은 하동이 먼저다. 심고 또 베는 행정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곳에 예산을 쓰는 행정 이 먼저다. 군정이 진정 군민의 신뢰를 원한다면, 이제 는 묻는 군민을 탓할 것이 아니라 묻게 만든 행정을 돌 아봐야 한다.

수목은 침묵한다. 그러나 군민의 분노는 침묵하지 않는 다. 정원은 말이 없다. 그러나 예산의 흐름은 모든 것을 말한다. 하동의 나무가 누구를 위해 심어졌는지, 하동의 정원이 누구의 만족을 위해 넓어졌는지, 그리고 그 돈이 과연 어디에 먼저 쓰였어야 했는지, 이제는 군정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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