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회를 겨눈 어이 없는 왜곡 — 민생을 살리고 낭비를 자르는 것이 의회의 일
김동욱의 하동 인사이트 혁신을 향한 목소리
- 제 29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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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의 하동 인사이트 혁신을 향한 목소리
의회를 겨눈 어이 없는 왜곡 — 민생을 살리고 낭비를 자르는 것이 의회의 일
민심은 어디를 가리키는가
“군민의 돈은 군민의 밥상으로.” 행정의 첫머리는 이 간명 한 원칙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일부 지역 매체와 포털 재 전재 기사들이 최근 하동군의회의 예산 조정을 두고 ‘발목 잡기’로 몰아가며, 마치 의회가 군에서 내민 예산을 원안 대로 가결만 하는 기관이면 좋겠다는 뉘앙스를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의회는 거수기가 아니다. 의회는 군민이 위 임한 예산의 마지막 관문이며, 민생을 살리고 낭비를 걸러 내는 안전장치다.
골목에서 만난 민심은 분명하다. 노인은 “응급상황에 병원 가는 길이 멀다”고 말했고, 젊은 부모는 “아이들 하교길이 더 밝고 안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상인은 “장날마다 주 차와 하역이 전쟁”이라 호소했고, 농민은 “배수로·농로 정 비가 급하다”고 했다. 예산은 이 목소리를 정책 언어로 번 역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는 화려한 포토존 이나 전시관 개관식이 아니라, “불편이 해소됐다”는 체감 에서 나오는 법이다. 작은 배수로 하나가 비 오는 날 침수 를 막고, 효율적인 도로 정비 하나가 노인의 외출을 가능 케 한다는 것을 행정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반기가 지난 시점에 당초예산의 36.5%에 달하 는 2,200억 원을 한꺼번에 풀어놓는 대규모 추경은, 원래 ‘ 예외적·보완적’이어야 하는 추가경정의 취지를 무시한 처 사다. 이는 경남 타 시군 1회 추경 평균 증감률의 무려 6배 에 달한다. 이 수치는 곧 연초부터 세입을 더 정확히 예측 하고 조기에 편성·집행했어야 한다는 명백한 증거다. 상 반기 신속집행 평가에서 2023년 18위, 2024년 15위, 올해 13위로 여전히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부가 내세운 1분기 인센티브는 전국 243개 지자체 중 145곳, 경남 18개 시군 중 14곳이 받은 ‘보편적’인 보상 일 뿐이다. 꼴찌에서 중간으로 올라섰다고 전교 1등처럼 자랑하는 격이다. 이런 포장은 군민을 기만하는 정치 쇼 에 불과하다.
숫자가 말하는 재정의 상식
숫자는 감정을 이긴다. 2023회계연도 순세계잉여금 1,716 억 원, 행안부 지방재정분석 ‘마’ 등급, 교부세 산정 패널티 34억 원, 이 세 가지 신호는 재정 운용이 민첩하지 못했고, 계획과 집행의 정합성이 떨어졌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용어를 풀어보자. ‘순세계잉여금’은 쉽게 말해 “지 난해 쓰고도 남아 다음 해로 넘어온 돈”이다. 남는 게 왜 문 제냐고 묻지만, 공공예산은 남기는 것보다 제때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 원칙이다. 필요했는데 못 썼거나, 계획이 허 술해 돈이 놀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교부세 패널티’는 “ 국가가 지역 형편을 보고 내려주는 보조금(교부세)을, 예 산을 제때 못 써서 덜 받게 되는 불이익”을 뜻한다. 다시 말 해, 돈을 굴리는 법이 서툴러 다음 해 받을 몫까지 줄어드 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일부 보도는 재정공시에서 패널티를 ‘인센티브’ 처럼 표기했던 오류를 외면한다. 이는 군민의 신뢰를 해치 는 일이다. 예산은 ‘얼마를 확보했는가’가 아니라 ‘어디에, 언제, 어떻게 썼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확보는 시작일 뿐, 집행이 성과를 만든다. 예산을 집행하는 시간표와 방 법이 곧 행정의 실력이다.
이 관점에서 금번 군의회에서 삭감된 항목을 보면 맥락이 선명해진다. 군청사 주변 주차장 조성 10억, 정기룡장군 메 모리얼파크 7억 8,901만 원, 하동호 명품 정원 10억, 폐철 도 구간 유지보수 9억 8천만 원, 송림공원~하동공원 보행 환경 개선 17억 등은 표면상 ‘도시 미관’과 ‘관광 편의’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달았지만, 당장 삶의 현장을 바꾸는 효용 과는 거리가 있다. 이미 거액을 들여 조성한 폐철도 산책 로를 다시 평탄화하겠다는 발상, 이용자 규모와 효용성이 극히 의심되는 송림공원에서 하동공원으로 올라가는 길 에 엘리베이터 두 기와 에스컬레이터까지 설치하겠다는 계획은, 설치비보다 더 큰 사후 비용, 전기료·부품교체·정 기 안전검사까지 감안하면 향후 재정의 ‘눈덩이’를 예고한 다. 시설은 지을 때보다 ‘지은 뒤’가 더 비싸다.
삶을 바꾸는 예산의 기준
예산은 미감을 완성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활을 바꾸는 장 치다. 그래서 기준은 단순해야 한다. 첫째, 당장 삶에 닿는 가. 둘째, 유지관리까지 감당 가능한가. 셋째, 같은 돈으로 더 큰 안전과 편익을 만들 수 있는가.
이 기준으로 보면, 응급의료 대응 강화(지역병·의원 연계, 구급 인력·장비 보강), 고령자 낙상·치매 예방, 돌봄 공백 해소 같은 생활 안전망 투자는 ‘곧바로 효과가 돌아오는’ 예산이다. 농로·배수로·소하천 정비, 지반침하 위험 구간 보강, 통학로 LED 조명과 고원식 횡단보도 설치, 전통시장 하역공간 재배치 같은 생활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사진보 다 사람이 먼저다.
청년 정주여건도 구호가 아닌 구조로 풀어야 한다. 주거· 일자리·교통·문화가 함께 맞물릴 때 인구가 남는다. 민간 아파트 공급을 가로막는 과도한 기부채납 관행과 인허가 지연을 정비하고, 승인 절차를 투명하고 신속하게 돌려 민간의 활력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 관(官)이 45세대 임대 아파트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방식으로는 청년층을 붙잡 기 어렵다. 기업 유치의 전제는 전력·용수·도로·주거·교 육의 ‘패키지 조건’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이 진짜 민 생예산이다.
또 하나 분명히 하자. 국도비가 포함됐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야 할 사업은 아니다. 군비 부담이 과도하거나, 연내 이행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억지로 끼워 넣으면 결국 ‘반 납’이라는 더 큰 손실로 돌아온다. 과거 최참판댁 친환경 숙박시설 사례를 떠올려 보라. 이는 전임 군수가 국·도비 를 확보해 충분한 사업성을 갖추고 추진하던 사업이었다. 그러나 현 군수는 이를 이유 없이 반납했다. 원칙이 상황 과 인물에 따라 바뀌는 이런 선택적 행정은 군민 신뢰를 무너뜨린다. 사업 타당성과 실행 가능성은 예산보다 앞서 야 하며, 깃발만 꽂아두고 연말에 밀어 넣은 뒤 다음 해로 이월·불용을 반복하는 악습은 반드시 끊어야 한다.
왜곡을 만드는 사람들
일부 지역 매체는 의회의 예산 삭감을 두고 ‘성장 발목잡 기’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진짜 성장은 속도가 아니라 방 향에서 결정된다. 방향이 틀린 채 속도만 내면, 그것은 곧 낭비다. 사진 한 장만 남기고 군민 삶에는 아무 변화도 주 지 못하는 전시성 사업에 예산을 더 얹자는 주장은, 현장 에서 민생을 피부로 느끼는 군민에게 전혀 설득력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기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뻔하다. 권력·홍 보·광고가 맞물린 낡은 ‘삼각 고리’ 때문이다. 예산과 행사, 홍보물을 매개로 유착을 강화하고, 불편한 비판은 ‘잡음’ 으로 치부하는 구조다. 기사 문장은 겉보기엔 중립을 가 장하지만, 실제로는 핵심 사실을 비틀고 책임의 방향을 슬 쩍 바꾼다. 예를 들어, 산업단지 소송에서 1심 ‘0원’이 2심 에서 ‘284억 원’으로 뒤집힌 명백한 패소를 ‘대승’이라 포 장하는 식이다. 더구나 대법원 판결처럼 중대한 사안조차 의회에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는데도, 정례 간담회 참석을 근거로 ‘보고 체계에 문제없다’고 강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언론의 책무는 권력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보도는 ‘민생 외면’이라는 프레임을 되풀이하며, 의회 의 정당한 견제와 조정을 무력화하고 군정의 잘못을 세탁 한다. 그 결과, 피해는 고스란히 군민 몫이 된다. 눈만 즐겁 게 하는 조형물, 밤이면 적막한 공원, 사용 빈도가 떨어져 유지비만 불어나는 구조물….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비어 있는 이 모든 사업의 비용을, 결국 누가 치르고 있는지 군민은 똑똑히 알고 있다.
예산은 체감으로 증명된다
꽃과 조형물은 사진으로 남지만, 응급차 도착시간의 단축, 빗물 고이는 골목의 해소, 밤길의 조도와 안전, 아이들의 통학로, 장날의 주차와 하역, 노인의 병원 접근성 같은 변 화가 군민의 하루를 바꾼다. 의회의 예산 조정은 ‘예쁘다’ 의 언어보다 ‘살아진다’의 영역을 우선하는 선택이었다. 이 것을 ‘정치’라고 부른다면, 그 정치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검증 가능한 정치다.
앞으로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삭감·증액 사유와 우선순 위를 더 투명하게 공개하고, 군민이 이해할 언어로 설명해 야 한다. 둘째, ‘준비된 사업만 예산 편성’이라는 상식을 분 명히 하자. 셋째, 유지관리 비용까지 포함한 전 생애 주기 비용을 사전에 공개해, 전시성 사업을 걸러내자. 넷째, 국 도비 사업도 군비 부담과 실행 가능성을 냉정히 따져 ‘받 아야 할 돈’과 ‘받지 말아야 할 돈’을 구분하자.
하반기의 대규모 추경은 내년 재정에도 그림자를 드리운 다. 지금 ‘보여주기’로 채우면 내년에 ‘갚아내기’로 허덕인 다. 순세계잉여금의 재발과 교부세 패널티의 확대는 복 지·안전·교육의 몫을 잠식한다. 그래서 지금 바로잡아야 한다. 의회는 군수의 반대편이 아니다. 의회는 군민의 편 이다. 군정이 군민을 향해 갈 때 의회는 동반자이며, 군정 이 군민을 떠날 때 의회는 제동장치다. 이 두 기능 모두가 민주주의의 장치다.
결론은 단순하다. 민생을 살리고 낭비를 자르는 것—그게 예산의 상식이다. 왜곡된 프레임이 이 상식을 이길 수는 없다. 군민의 돈은 군민의 밥상으로, 이 대원칙을 흔드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결국 시간 앞에서 퇴색할 것이다. 하 동의 내일은 오늘의 예산에서 시작된다.